내상(內傷)을 입고 성장을 멈춘 것도 관계 때문이고, 다시 움직여 성장을 재개할 동력을 얻는 것도 관계를 통해서 가능하다. 내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대가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고, 그 사람의 내면을 향해 나의 존재를 쏘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간에 반복되는 이런 투사와 내재화, 동일시의 과정이 성장의 사이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경우만 해도, 그런 것 같다. 대인관계에서 얻은 크고 작은 상처는 역시, 사람으로 치유하는 것 같다. 내 잘못이었든,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덨든, 대인관계로 인했던 상처로, 닫혔던 마음, 정지된 마음은, 내가 관계 맺기로 용기를 내었을 때. 그 때가 되어서야 마음이 열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p.143
오랜 시간 어떤 사람과 안정적이며 배타적인 관계를 맺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남과 느낄 친밀감에 대해 환상을 갖는다. 타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와 내가 하나가 되는 환상이다. 또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그 사람이 항상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기를 바라는 일심동체의 환상. 그렇지만 환상은 환상일 뿐 현실이 아니다. 현실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친밀함이 아니다. 한쪽의 일방적 흡수일 뿐이다. 내가 독립적인 존재라면 타인도 그런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각자에게는 고유의 영역이 있음을 서로 존중하면서 교류를 맺는 것, 그 안에서 서로에게 적당히 의지할 수 있고, 또 누가 내게 기댈 때 그것을 받아주는 것, 또 내가 잠시 그 사람에게 의존하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내가 그 사람에게 영원히 의존해서 흡수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친밀감이 생긴다.
어릴 때 엄마와의 사이에서 경험했던 '엄마와 나는 한덩어리'라는 공생적 친밀감과는 분명 다른 종류다. 유아 때 느꼈던 친밀감의 환상을 성인기에 적용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일반적 친밀함에 만족하지 못하기도 하고, 친밀감이란 감정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친밀감이란 서로의 관계를 아주 가까운 거리로 당겨놓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과 한 사람 사이에 최적의 거리를 산출하는 것, 그리고 그걸 유지할 줄 아는 것, 그 안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성숙한 독립된 개체 사이의 친밀함의 요체다.
누구나 100 퍼센트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다고.. 그것도 내 기준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했으면 한다고, 노력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함께 해주기를, 언제나 내 마음 갖기를 바라는... 그런 관계는 있을 수 없다고. 그렇게 끝없이 되뇌이고 있다. 연애 문제에서 말이다. 내 마음과 같지 않아서, 일방적으로 나만 더 좋아하는 것 같은 생각에, 결국 틀어져버리고 말았던 과거 몇 몇 '대인관계'를 돌이켜보면, 그 때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아껴주었구나... 생각이 되어진다.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상대방의 마음이, 나중이 되어서야 보이게 된 몇 번의 아쉬움이 남는 시행착오를 통해, 지금의 나는 "그래선 안된다" 머리로만 생각한다. 역시나 아직까지도, 내 마음 같지 않아서 때때로 불필요한 외로움, 2% 부족한 어떤 갈급함이 부각되는 순간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성숙한 뇨자니까.... 느낌 아니까 ㅋ 정신 바짝 차리고 있는 중이다.
p.198
가장 성숙한 성인의 사랑의 결실은 결혼을 하고 부부란 배타적 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결혼반지를 끼는 순간 나는 독립성을 포기해야 한다. 박수를 치려면 반대쪽 손이 있어야 하듯이 사랑도 그렇다. 결혼이란 결국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라 냉정하게 얘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나친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사랑은 건강하지 않다. 그것은 야만적 흡수통합이거나 상대방에게서 자기의 이상적 이미지를 보려는 허상 찾기일 따름이다.
잘함과 못함, 옳음과 그름의 잣대가 아니라 나와 너는 다르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 내가 원하는 상대방의 부분만 보고 내 일부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방 전체를 인정하고 안는 것이 사랑이다. 보여주고 싶지 않던 내 전체를 보여줄 용기를 내고, 일방적 흡수가 아닌 공존과 상호의존이란 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사랑은 더욱 성숙해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란 인간에 대해, 사람 전반에 대한 진심 어린 통찰을 할 수 있고 그 깨달음은 나의 변화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마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상대방도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아끼고 있음을, 나와 너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를 맞춰보려 안간힘을 써보다 지쳐 부러져 버리는 것은 더는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상대방이 원하는 '어떤 이미지'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결국엔 지치게 될 것이라는 것. 결국은, 나와 다를 너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대인관계 그리고 좁게는 사랑을 오래 유지하는 하나의 요소이지 않을까.
p.216
누군가를 알고 친해지고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조금씩 두려움도 커진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남과 다른 나'를 구축하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면서 형성된다. 그래서 그 벽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경우 내가 흡수되거나 사라져버리거나 들어온 사람에 의해 조종당해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는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아직 친해지지 않은 사람하고는 적다안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고, 그리 친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너무 빨리 다가오면 흠칫 놀라면서 한발자국 물러서게 된다.
특히 이성관계에서는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성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친밀감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p. 221
성숙한 두 사람의 관계는 일종의 경쟁관계여야 한다. 일방적인 관계여서는 안된다. 상대방의 요구 수준이 너무 낮으면 지루해하고, 과도한 요구를 받으면 열등감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분노와 반감이 생길 수 있다. 적당한 거리에서 힘과 서로에 대한 영향력의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p.278
내가 걸오온 길 요소요소마다 남겨놓고 온 삶의 흔적들 중 후회스러운 것들은 유독 생명력이 강하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후회스러운 일들만은 절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죽여도 죽여도 사라지지 않고, 기회만 되면 어디선가 나타나 불쾌한 느낌을 던져주는 바퀴벌레와 같다. 그놈들을 보기 싫어서 뒤를 돌아보는 것을 겁낸다. ...
후회에서 중요한 것은 뒤를 돌아보는 것만이 아니다. 후회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regret, reproach, remorse 등 re-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어에서는 '다시(re)'에 방점을 두고 있다. 뒤를 돌아보고 그 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노력이 후회를 의미하는 단어 안에 기본 옵션으로 내장되어 있다. 뒤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다시 하지 않게다는 다짐'과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이라는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
후회가 없다면 인간에겐 변화와 진보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봐 평가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없다면 올곧은 방향으로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후회의 아픔이 싫고 무서워서, 후회를 치우지 못한다. 결국 후회의 눈이 쌓여 녹지 않은 채 지붕 위를 짓누르면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집은 무너지고 만다. 이렇게 후회에 매몰되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중압감과 인생 전체에 낙제생이 된 듯한 마음을 삶의 고비마다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난, '후회 하지 않아'라는 말을 호기롭게 하곤 했다. 분명, 아쉬움이 남는 선택들과 행동들이 있지만, 그로 인해 가끔은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들이 있곤 했지만, 그냥 그 외에 다른 결론은 없었다고, 그렇게 '가지 않은 길'을 외면하고, 아쉽기는 하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 아쉬움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커져갔고 (지금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나, 그래도 이전처럼 힘들지는 않아 다행이다) 나를 괴롭히는 빈도와 세기 또한 점차 증가했었다.. 조금 솔직해 보면, 그래.. 몇 가지 일은.. 후회한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던 적도 많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후회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쉬움이 남는다'고 돌아보고, 생각 좀 해본 끝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되어있고, 비록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찐따'이나, 그 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나로 발전해 있다고 생각을 한다.
p.282
후회를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기쁘고 가슴벅찬 후회란 없다. '인위적 실수'가 수사적 말장난이듯이 그것은 자기 최면일 뿐이다. 후회는 면역도 되지 않는다. 웬만한 일에는 내성이란 것이 생긴다. 같은 강도의 자극이 들어와도 역치가 올라가서 반응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후회는 그렇지 않다. 후회스러운 일은 도리어 기억 속에서 꺼낼 때마다 자극의 강도가 강해진다. 그 후회 위에 덧씌어진 현재의 비슷한 상황이 후회란 칼날을 더 날카롭고 포악스럽게 만든다. 그ㅓㅎ기에 아예 처음부터 후회와 관련된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은 본능적 가지 방어다. 그렇지만 적절한 순간에 후회를 하면서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대해 피드백을 하지 않으면 성장과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비뚤어진 채 그대로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미아가 되어버린다. 마음이 아프고, 지키고 싶은 소중한 자존심에 상처가 나지만 후회가 없다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도, 만족스런 이생을 사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p.294
후회할 줄 모르는 인생에는 발전이 없다. 동시에 후회에 사로잡히면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된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후회, 후회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것, 지워지지 않을 후회를 안고 살아갈 용기와 반성, 그리고 자기 완결성의 환상을 포기하는 것, 후회는 이때부터 더 이상 족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줄 연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