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본질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토록 실감나게 알려줄 수 있는 책이 또 있을까!
웬만한 사람은 대부분이 공감할만한 '거대한 슬픔'을 가진 주인공이 삼위일체를 만나 위로받고, 사랑받고, 치유되고 용서하는 과정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단, 용서하는게 그리도 쉽던가? 잘 이해되지 않기는 했고,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모태신앙으로 오래 '하나님'을 아는 척 해왔으나 최근 몇 년까지도 몰랐던 건, 사랑. 예수님이 사랑이시라고, 예수님이 날 사랑하신다고 알려주었던 기도모임. 사랑받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느꼈기에 처음엔 '훗- 웃기셔'하고 넘겼지만 4년 가까이 그 기도모임에 발(만)담그고 있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사랑으로 변화됨'을 보면서, 그 '예수님'이란 분이 참 궁금도 해지더니... 넘어졌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사랑했다 원망했다를 반복하며 '내가 예수님한테 해준게 뭐 있다고 날 사랑하고 그러신데요?' 반항도 해보았다 결국엔 알게되었다, '나는 연약하고 고집불통 완악하지만, 그럼에도 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마땅한 존재이고, 당신은 내 모습 그대로 날 사랑하시는군요...'
이 책은 내가 알게된 예수님,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와 너무도 비슷해서, 참으로 반가웠고 읽는 내내 나 자신이 예수님과 친구처럼 대면하여 교제하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이 작가 아저씨도 참 운이 좋게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알고 있었나보다:)
책에서 하나님은 '파파'로, 예수님은 '예수'로, 성령님은 '사라유'로 등장한다. 영화로도 나오면 꽤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흥행에는 관심없다;).
본문 중에서
"... 하지만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관계가 이만큼 실제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똑같진 않더라도 훨씬 더 실제적일 수 있어요." "..." "처음부터 내 목적은 내가 당신 안에서 살고 당신이 내 안에서 사는 거였으니까요." "..." "놀라운 일 아닌가요? 그게 바로 파파의 기적이죠. 사라유의 힘은, 곧 나의 영이고 하나님의 영이기도 한데, 그것은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을 결합하고 복구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매 순간 철저하게 인간으로 살기로 선택했지요. 나는 완전히 하나님이면서 속속들이 인간이에요. 좀 전에 말한 대로 파파의 기적이죠."
"그럼요. 여기는 바로 당신의 영혼이에요. 이 혼란스러운 정원이 바로 당신인 거죠! 당신의 마음 밭에서 우리가 함께 목적을 갖고 일했어요. 비록 거칠지만 아름답고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당신이 보기에는 엉망 같아도 나에게는 완벽한 패턴이 형성되고 있는 게 보이고, 생기가 넘치는 게 느껴져요. ..."
"당신들은 나를 주님으로, 심지어는 왕으로 부르기도 하죠. 하지만 난 결코 당신들과 같은 방식으로 힘을 행사한 적은 없었어요. 당신의 선택을 통제한 적도, 당신에게 뭘 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어요. 당신이 하려는 일이 당신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해가 되거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라도 말이죠." "..." "내 의지를 당신에게 강요한다는 건 사랑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진정한 관계는 비록 당신의 선택이 쓸모없고 건전하지 않더라도 순종하는 특징이 있어요. 파파와 사라유와 나의 관계에서 당신이 아름답다고 했던 것이 바로 그거예요. 우리는 진실로 서로에게 순종해요. 지금까지 늘 그랫고 앞으로도 그러겠죠. 파파가 나에게 순종하는 만큼 나도 파파에게 순종해요. ... 순종은 권위에 관한 것도 복종도 아니에요. 순종은 사랑과 존중의 관계에 대한거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당신에게도 순종해요." "..." "당신이 우리 관계의 원 안에 들어와 주길 바라니까요. 나는 내 의지에 굴복하는 노예를 원하지 않아요. 나와 생명을 공유할 형제자매를 원해요."
"당신은 당신의 자녀 중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하늘과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두 아이를 선택해야 해요. 딱 두 명만. ... 또 당신의 자녀 중에서 영원히 지옥에서 살아갈 세 아이를 선택해야 해요." ... "대신 내가 가면 안 될까요? 영원히 고문받을 사람이 필요하다면 내가 대신 가겠어요. 그래도 될까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 내 아이들 대신 내가 가게 해줘요. 제발. 그러면 좋겠어요. 제발, 이렇게 빌게요. 제발." ... "이제 당신은 예수님 같은데요. 매켄지, 당신은 심판을 잘했어요. ..." ... "...당신의 전부를 희생한다고 해도 당신의 아이들을 사랑할 가치가 있다고 심판했어요.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죠."
"맥, 전부 이해할 필요는 없어요. 나와 함께 있기만 해요." 그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예수 옆에 누웠다.
"나는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나를 신뢰하고, 나와 당신이 나누고 있는 사랑의 방식대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성장하기만을 바랄 뿐이죠. 그들을 변화시킨다거나 확신시키는 건 당신이 할 일이 아니에요. 당신은 어떤 의무도 없이 자유로이 사랑하면 돼요."
"왜 나인가요? 그러니까 왜 하필이면 매켄지 앨런 필립스죠? 이렇게 엉망인 사람을 왜 사랑해요? 그동안 당신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고 또 당신에게 비난까지 퍼부었는데 왜 굳이 나에게 다가오려고 그렇게 노력하는 거죠?" "사랑이 바로 그 일을 하니까요. 매켄지, 당신이 무엇을 하건, 어떤 선택을 하건 내가 놀라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아요. 나는 이미 알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당신에게 거짓말 속에 숨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가정해봐요. ... 그리고 당신이 마흔일곱 번의 상황을 거친 후에야 실제로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 다시 말해서 나의 말을 분명히 알아듣고 동의하고 변화한다고 가정해봐요. 그러면 당신이 처음에 내 말을 경청하지 않더라도 나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리겠죠. 마흔여섯 번만 더 가면 되니까요. 그 첫 번째 상황은 언젠가 당신이 건너갈 치유의 다리를 세울 기초가 되겠죠. 바로 오늘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요."
"매켄지! 성경은 규칙을 따르라고 가르치지 않아요. 성경은 예수님의 그림이죠.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그가 당신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주죠. 하지만 당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생명과 삶은 오로지 하나님 안에만 있어요. 설마 당신 스스로 하나님의 공정함 안에서 살 수 있다고 착각한건 아니죠?"
"... 대체 왜 나를 사랑하는 건가요? 나는 아무것도 드릴 게 없는데요?" "맥,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요. 당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더할 것도, 앗아갈 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 무척 자유로울 거예요.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줄어들겠죠."
"나는 그 누구에게라도 무엇을 기대해본 적이 없어요. 기대라는 말에는, 미래나 결과를 모르면서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행동을 통제하려 한다는 뜻이 전제되어 있어요. 인간은 대개 기대를 통해 행동을 통제하려고 애쓰죠. 우리는 당신과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이미알고 있는데 또 무엇을 기대하겠어요? ... 더군다나 내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죠."
"맥, 나는 여러 가치를 나열한 목록 중에서 첫 번째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모든 것의 중심이 되고 싶은 거예요. 내가 당신 안에서 살 때 우리는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함께 겪으면서 살 수 있어요. 나는 피라미드의 꼭대기보다 모빌의 한가운데가 되고 싶어요. 친구와 가족, 직장, 생각, 행동 등 당신 삶의 모든 것이 나와 연결되어 존재의 춤 안에서 바람과 함께 경계 없이 움직이고 싶어요."
"네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을 끄집어내서 잘 보게 해주고 싶어. ... 너를 부그럽게 하려는 게 아니야. 나는 굴욕이나 죄책감을 주지도 비난하지도 않아. 그런 건 완전함이나 공정함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해. 바로 그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지." 파파는 맥의 수치심이 씻기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오늘 우리는 너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치유의 길을 나선 거야. 이건 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해. ..."
'하나님, 봉사하시는 이.' ... '보다 진실하신 하나님, 나를 위해 봉사하시는 이.'
믿음은 어디로 이끌려갈지 전혀 모르면서도 자신을 이끄는 분을 알고 사랑한다. - 오스왈드 체임버스
맥캔지란 주인공에게 (내가 읽어 느끼기로는;;) '편안한' 분으로 다가간 것 같다. 내가 느낀 나의 예수님은 참 gentle하신데...(아 유 젠틀? =ㅅ=; 이런 개그;). 지극히 개인적이고 별거없는 나름의 마음속 어두운 부분을 들춰보이시고는 무한한 위로를 누리게도 해주셨었지. 하지만 같은 문제로 완전히 자유하지 않아 때때로 우울해지기도. 이럴 땐, 다시 시작하면 되는거다. '예수님, 이게 몇 번째죠? 내가 예수님께 완전히 돌이키게 되기까지 얼마 안남았죠?' 예수님 기억하지 못했다고 낙심하는 것 보단, 지금 기억해 낸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 변화될 나를 기대해보고. 그러면 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