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문득 공지영씨의 '어찌됐든 널 응원한다'는 식의 제목이 붙은 책이 떠올랐었다. 언젠가 공지영씨의 그 책에는 '자기합리화'가 안타까울정도로 많아 읽기가 거북했다는 글을 쓴 것 같다 (아님 말고;;). 어느 책이나 어느정도 자기합리화가 존재하겠지만, 인상을 찌푸릴정도인가 아닌가에 따라 책에 대한 느낌도 달라진다 (적어도 나에게는;;). 어쩌면 내가 참을 수 없어하는 나의 모습 중 하나가 지나친 합리화 (역겨울정도의)이기에 다른이에게서 그런 모습이 드러날 때 마음이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탓이다, 책이 조금이라도 맘에 안들었다면;;)
이 책은 후자에 가까웠다.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정말 그 때 그 주인공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심리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이란 것이 내 것이라 해서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고민이 되고, 나의 경우라면 어떨까 고민스럽기도 했다 (저자의 의도는 이게 아니었다면 할 수 없고;;).
본문 중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거부는 경멸로 이어졌지. 경멸에서 분노로 옮아가는 건 아주 간단했어. 내 어머니의 사랑이 오로지 표면적인 것과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되어야 하는가에- 연관된 행위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난 내 방의 구석진 곳, 내 마음의 은밀한 곳에서 어머니를 증오하기 시작했어.
아르고는 내가 귀찮게 했기 때문에 떠나버렸어. 그러니까 나의 행동이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영향을 줬던 거지. 영향을 줘서 사라지고 파괴되도록 만들어버렸던 거야. 그때부터 내 행동들은 극단에 치우치게 되었어. 다른 잘못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차츰 위축되었고 둔감하고 우유부단해졌지. ... 사랑이란 주제처럼 죽음도 어린이가 마주해선 안 되는 주제였지. 아르고가 죽었다고 내게 말해줬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 분명 난 더 많이 울면서 절망했을 거야. 몇 달이고 아르고가 묻힌 곳에 가서 흙을 사이에 둔 채로 오랫동안 아르고와 얘기했을 거야. 그러고 나선 점차로 그를 잊고 다른 것들에 관심과 열정들을 기울이게 돼버렸을 거야. 아르고는 추억으로,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되었을 거야. 하지만 그때 아르고는 내 속에 간직한 작은 죽음이 되었어. 그래서 여섯 살 때 어른이 되었다고 말한 거란다. 이미 기쁨 대신에 불안을, 호기심 대신에 무관심을 갖게 됐으니까.
"힘겨운 인생길, 그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온 힘을 기울여 당신 자신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난 몹시 충격을 받았단다. 그 순간까지 내 인생은 매우 평범해 보였으니까.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고, 그런 어려움들은 건너기 어려운 심연이라기보다 젊은 날의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잔물결처럼 보였어. ... 견고하고 직선적인 표면 뒤에- 부르주아 여인으로서의 평범한 일상 뒤에- 사실은 작은 비탈길, 고통, 돌연한 암흑, 깊은 파국으로 이루어진 계속적인 움직임이 있었던거야. 살아오는 동안 종종 절망이 날 짓누를 때면, 내가 똑같은 장소에 멈춰 서서 발을 구르며 행진하는 군인들 같다는 생각을 했어. 시간이 변했고 사람들이 변했고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변했는데 난 계속 정지해 잇는 느낌이었지.
내가 만약 사랑의 첫 번째 성질은 힘이란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전혀 다른 일들이 생겼을 거야. 그렇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필요가 있단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깊이 알고 자신에 대한 모든 것, 감춰진 것들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을 모두 알 필요가 있지. ... 누군가가- 혹은 바람이- 너를 강물 속으로 집어 던지면, 넌 널 이루는 육체 덕택에 깊이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뜰 수 있는 거야. 이로 인해 넌 마치 승리한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야. 그래서 넌 금방 헤엄치기 시작하겠지. 넌 강물이 실어다주는 방향으로 재빨리 달려갈 것이고 가끔씩 뿌리나 돌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정지하게 될 거야. ... 그러다가 시간이흐르고 수 킬로미터를 지나면, 둑이 낮아지고 강은 넓어지며 여전히 강의 경게선이 있긴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을 거야. '난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넌 그때서야 자문할 거고 바로 그 순간에 바다가 네 앞에 펼쳐질 것이다. 내 인생은 대부분 그랬단다.난 헤엄쳤다기 보다는 발버둥쳤던 거야. 우아함도 기쁨도 없는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몸짓으로 난 겨우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었던 거야.
기억의 기능은 냉장고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랫동안 냉장고 안에 들었던 음식을 꺼낼 때를 생각해 보겠니? 처음엔 냄새도 맛도 없는 벽돌처럼 단단하고 하얀 성에로 뒤덮여 잇지 않니. 하지만그것을 불에 올려 놓자마자 차츰차츰 원래의 형태와 색깔을 되찾고 그 향기는 부엌을 가득 채우게 되지. 마찬가지로 슬픈 기억들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기억의 동굴 가운데 어느 한 동굴 속에 활기 없이 놓여 몇 년, 수십 년, 평생 동안 그곳에 잇게 된단다. 그러다가 어느 날 표면에 나타나는데 그기억이 동반하는 고통은 수십 년 전의 그날처럼 다시 눈앞의 것이 되어 강렬하고 예리해지지.
여러 해 동안 내 힘으로 길을 걸어왔다고 믿었지만 그게 아니라 난 혼자서는 단 한 걸음도 떼어놓을 수가 없었던 거야. 비록 나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내게는 말이 한 마리 있었고, 앞으로 걸어나간 것을 내가 아니라 그 말이었어. 말이 사라진 순간 난 내 다리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깨달았다. 걷고 싶었는데 발목은 포기해버렸고, 내가 걸었던 걸음들은 유년의 어린아이나 노인의 불안정한 발걸음 같았어.
그분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은 땅과 같아서 반은 태양에 의해 빛나고 나머지 반은 그늘 속에서 빛난다는 거지. 성인들조차도 어디서든 빛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육체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우린 어쨌든 그림자를 갖고 있지요. 우린 개구리나 수륙 양생의 동물들과 같아서 우리들 중의 일부는 저 밑에 살고 또 다른 부분은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답니다. 산다는 것은 그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인지하는 것, 그것을 알고 빛이 그림자에 압도되어 사라지지 않도록 투쟁하는 것일 뿐입니다. 완벽한 사람을 경계하세요."
에르네스토가 죽은 뒤, 난 계속 내면적인 행진을 했지만 그건 내 의식 속에서 제한된 행진이었어. 그 속에서 나는 내 앞에 놓인 벽을 발견했고 그것을 넘어서면 길을 더욱 넓게 빛나리라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뛰어넘어야 할지는 몰랐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