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는 책들은 모두 마음의 위로를 주는 책들인 것 같다.
몇 권의 책을 연달아 읽으면서, 내 마음을 많이 들려다 볼 수 있었다.
얼마전 나는 친구에게 "꿈이 없는 느낌"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나의 미래 직업이 포괄적으로는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었을 수도 있고, 아님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려니 적성에 맞는게 없는 것인지 '하고 싶은게 없다'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예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업이 포괄적으로 '수영선수'일 수는 있어도, 그 중에 내가 자유형을 잘하는지 배영을 잘하는지 모르겠는 마음과, 평영을 좋아하는건지 접영을 좋아하는건지 헤깔리는 심정, 접영을 좋아하는데 배영을 잘한다거나, 수영선수의 길로 들어오긴 했는데 딱히 어느것도 좋아하는 건 아니었던건 아닐까 싶은 회의감. 뭐 최근 내 마음은 위의 수영선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책들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꿈많던 어린 시절의 열정을 기억해내었고, '마음'에 민감한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귀기울일 수 있는 치유자가 되고 싶단 꿈을 조심스럽게 가져봐도 될까, 생각해보았다.
책 속에서
의사로서 나는 늘 치료와 치유를 동일시해 왓다. 하지만 치료와 치우 사이에는 깊은 차이가 잇다는 사실을 나는 에린을 통해 깨달았다. 에린은 치료되지 모했지만, 치유되었다.... "다음 세상에서 선생님을 다시 만난다면, 상처받고 버림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병원을열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안녕히..."
나는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죽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자넨 의대싱이야. 하지만 의학의 많은 부분은 사회사업이나 마찬가지일세. 자넨 이 교육기간이 끝나기 전에 자네가 곧 간호사요 약사요 물리치료사요 심지어 목사라는 걸 깨닫게 될 걸세. 어느 날, 거울 속에서 환자가 필요한 건 무엇이든 해주려는 자네 모습을 보게 될 거란 말이지. 그게 바로 우리 직업이라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말일세."
우리 의사들은 다른 이들의 삶에 들어가도록 초대된, 특권받은 극소수의 사람들이라네. 우린 그들의 삶을 통해 환상을 맛보고, 실망을 느끼고, 성취에 빠질 수 있고, 심지어 삶의 위대한 비밀을 배울 수 있기까지 하거든. 우리가 잠시 여유를 갖고 우리에게 오는환자들이 누구인지 눈여겨 살펴보기만 한다면 말이야. 피곤에 절어 있는 한 의대생이, 어쩌면 의학의 현실에 다소 환멸을 느꼈을 법한 한 의대생이 동북부 산촌의 한 여인과 그 아들의 삶을 통해 자신이 어릴 적부터 갈망해 왔던 흥분과 사명을 발견한다는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어젯밤에도 우연 같은 건 없었네. 자넨 결코 그들을잊지 못할 걸세. 그리고 자네가 앞으로 보살피게 될 모든 환자들이 자네가 어젯밤 배웠던 교훈의 혜택을 받게 되겠지."
우리는 종종 어떤 상처(가족들의 부당한 대우, 친구의 배반, 이유 없이 받게 되는 증오, 가난 등) 때문에 과건의 삶을 떨쳐버리지 못할 때가 있다. 그 결과 자신이 사로잡혀 있는 부정적인 에너지의 희생물이 되어 현재 삶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이 부정적인 에너지는 보다 고차원적인 에너지가 우리 안으로 흘러드는 걸 방해한다. 이런 상태에선 치유든 평화든 행복이든, 어떤 것도 체험하기가 어렵다. 이에 대한 해독제는 용서다. 모든 선물이 그러하듯, 우린 용서를 해줌으로써 상대를 이롭게 한다. 용서하는 것은 용서받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Carpe Diem! 어제가 아닌,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상처에 대한 해독제가 용서라니, 그럴법도 하다. 하지만 이 해독제라는 것은 구하기가 너무 어려운 약제가 아닌가 싶다. 말이 쉬워 용서지, 마음은 어째서인지 쉽게 나를 '오늘' '행복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모양일까..
졸립다 -ㅅ- 자야지; 시험기간인 요즘, 나는 또 늦잠질. 늦게까지 공부하다 집에와서, 늘 하던 '일기쓰기' '싸이하기' '블로그하기' '훼이스북하기' '이메일확인하기' '인터넷쇼핑하기'를 어느정도 유지하려니 취침시간이 지연될 수 밖에...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