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에 읽은 책이다. 오래 전 읽었던 적이 있다. 처음 읽을 때는 '어라, 이 책은 예수님이 없어도 너무너무 잘 살 수 있을 것 처럼 말하네?'라고 느꼈는데..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예수님(또는 다른 신)이 꼭 있어야 해'라고 느껴져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 이 책을 읽을 때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밋밋함'이었다.
책 속에서...
'선한 싸움'은 자신의 마음이 시켜서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많이 변한 오늘날 '선한 싸움'의 전장은우리의 내면으로 옮겨 오게 되었습니다. 선한 싸움은 우리가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우리 내면에 간직한 꿈들이 힘차게 굼틀댈 때면 우린 용기백배하지만, 그땐 아직 싸우는 법을 알지 못했지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을 때는, 전장에 뛰어들 용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적대시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자신의 꿈은 유치하다거나, 실행하기 힘들다거나, 인생에 대해 몰랐을 때나 꾸는꿈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말이죠.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죽여버리는 겁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한 싸움. 나에게 가장 큰 적은 용기 없는 나의 마음. 돌이켜보면, 살아오면서 단 한번이라도 온전히 자신감에 차있던 적이 없다. 그런 나를 바꿔보고자 큰 결심을 한 지금조차, 내가 괜한 일을 시도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게 된다.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용기라.....어렵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인 힘 외에, 우리 곁에는 근본적으로 영적인 두 개의 힘이 존재합니다. 천사와 악마지요. 천사는 언제나 우리를 보호해주는 신의 선물이죠. 그는 굳이 불러낼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 곁에 있는 천사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까요. ... 악마 역시 일종의 천사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유롭고 반역적인 힘이죠. 난 그를 사자(使者)라고 부르고 싶군요. 우리와 세상을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죠. ... 사자는 오직 물질적인 차원에서만 개입합니다. ... 우리가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그는 자기 마음대로 흩어져버리고 맙니다. 또한 쫓아내버리면, 우리는 그가 가르쳐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잃고 맙니다. 그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 두루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그의 권능에 현혹당하게 되면, 우리는 그에게 소유됨과 동시에 선한 싸움에서 멀어지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사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충고를 듣고, 필요할 때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죠. 그러나 결코 그가 자신의 규칙을 지시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 이 부분은 좀 의아한 부분이다. 나의 악마를 알고, 그와 친구가 된다... 그래서 이것저것 묻고 그의 충고를 듣는다라..... 지금껏 알고 있던 악마/사단이라는 놈은 나를 예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내 마음을 자책과 염려로 얼룩지게 만드는 루저(?)로 알고 있었는데, 세상일로 조언을 준다니.. 결국엔 나에게 이롭지 않을 것 같은데...언젠가, 파울로 아저씨를 만나는 날이 생기면 물어봐야지 -ㅅ-;;;
누구나 에로스를 추구하는데, 자기 안의 에로스가 필로스로 변화할 대는 이제 사랑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가장 고귀한 형태인 아가페로 가기 위해서는 필로스의 인도를 받아야 함을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오류라고. 에로스로 만나, 언젠가 서로에게 익숙해져 나른해질 때 쯤, 이 기간이 아가페로 가기 위한 필로스의 시기임을 알 수 있을까? 사람들 사이의 아가페,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건가?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는 있을 법도 한데, 난 내 주변에서 실제로 보지는 못한 것 같아. 아가페. 기대되면서도 동시에 기대되지 않는.
... 나중에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여러 번 포기한 것도 기억났다. 깊은 회한이 몰려왔다. ... 사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던 나 자신에 대한 깊은 후회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충만한 삶을 즐기는 것일진대, 나는 무엇 때문에 거절당할까 두려워하고 하고 싶은 일을 훗날로 미루었던 것일까? ... 나는 스스로를 배신한 유다였다.
그분께 내가 정복한 것을 바치고 싶어요. 당신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군요. 정복을 봉헌하는 거죠. 돌에 베인 당신 발의 고통이나 손에 난 상처를 바치려고 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고행의 고통만 바치려고 하지요. 그것이 잘못된건 아니지만, 우리가 자신의 고통과 더불어 기쁨도 함께 바친다면 그분께서 행복해하지 않을까요.
"주님, 저는 당신의 성전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양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따위는 영원히 잊어버리라고.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모든 사람에게 다시 힘이 솟아나듯, 내게도 새로운 힘이 다시 솟아날 거라고. 언젠가 인간이 다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날이 올 것이고, 그러면 온 자연이 그의 안에 잠들어 있던 신이 깨어났음을 축복하리라고, 어린양의 눈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사랑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성적'을 잘 받아야 하는 식으로. 그래서 성적이 좋을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줄 알고 의기양양했었고,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졌을 때는 (최상->상위권) 혼자서만 엄청 주눅들곤 했었다, 더 이상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을 줄 알고..(결과적으로는 잘하나 못하나 동일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예수님을 처음 접했을 때, 그분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왜 날 사랑하세요? 난 당신에게 잘 한것도 없고, 내 욕심대로 나 원하는대로 그렇게 살아왔는데요..' '아직도 날 사랑하세요? 예수님 기억 못하고 혼자서 살아왔는데도요?'... 그때 그랬었지, 나란 존재만으로도 사랑받기 충분하다고.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나는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어쩌다 이 길에 샜죠?;;;)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는 곳에 가야 할 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제때 그곳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이 책 중간중간에 무슨 의식, 무슨 의식 (가령, 푸른 천체 의식)하며 훈련하는 방법이 등장한다. 나만 그런걸까, 아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모두 느끼는 걸까? 한 번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싶기도;;) 순례길에서만 통하는 의식일까?;;;; 쓸데없는 생각..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선한 싸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용기. 결국엔 꿈에 도달하게 되리라는 사실.